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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_20200523

제 자리에 누워 졸다가 호기심 유발 사건이 터지면 금세 눈이 초롱해지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앞발도 날린다. 그러다 잠잠해지면 다시 졸음 모드. 다시 신경 거슬리게 하는 호기심 유발 사건이 터지면 어떤 자세에서도 플래시맨처럼 혈기가 끓는다. 테이블 의자에 앉아 열심히 졸고 있는 녀석. 그러다 뭔가 깐족거리면 레이다망이 가동되고, 경고의 눈빛이 반들거린다. 뭐냥?! 선전포고 없이 바로 냥펀치 발사! '뭐가 이리 날뛰냥?' 휴전 상태. 다시 녀석은 평온의 휴식에 빠져든다. 짧은 휴전이 끝나고 다시 레이다망에 요상한 움직임이 포착, 녀석은 금세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다시 찾아온 평화에 따라 녀석은 퍼질러 휴식을 취한다.

일상_20200522

해 질 녘 둘레길에 발을 들여놓고 쉴 새 없이 한 바퀴를 둘러보며 아카시꽃이 떠난 흔적을 되짚어 본다. 미려한 향과 형형색색 다른 표정을 지닌 봄의 결실을 이어받아 곧 찾아오는 여름은 과연 어떤 모습 일까? 겨울이 훑고 간 황량한 스케치북에 하나둘 그려진 신록의 싹과 자연의 붓이 찍어낸 고운 색결, 거기에 더해 심심한 여백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역동적인 생명들. 조만간 신록으로 그득히 채워질 약속만 남겨 두고 한 계절을 풍미하던 시절의 흔적들은 이따금 지나는 빗방울에 용해되어 시간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노인공원에서 둘레길 곡선에 발을 들인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의 풍마로 쓰러진 아카시 나무지만 여전히 왕성하고 집요한 생존 본능으로 새 생명을 잉태시켰다. 큰 나무들이 또 다른 세상을 만든 것 같은 둘..

냥이_20200522

여주에서 돌아온 시각은 이미 자정은 넘었다. 한동안 무릎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다가와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새근새근 잠든 냥이. 단잠을 방해하기 싫어하고 있던 모든 걸 놓고 덩달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컴 앞에 앉아 정신줄을 팽개친 나도 건강을 위해 쉼표가 필요했고, 덕분에 침침 하던 눈과 머리를 식힌다. 꽤나 오래 동안 앉아 있던 내게 이 녀석이 휴식을 취하란다. 근데 네가 더 편해 보이는 건 뭐지? 이렇게 보면 눈을 떠 있을 거 같지만. 옆모습을 보면 한잠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지나 아예 벌러덩 드러 누었다. 이튿날, 난 일어나고 녀석은 다시 제 쿠션에서 한잠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렇게 배시시 눈을 뜨는가 싶었는데 자세를 바꿔 다시 잠든다. 어느 정도 잠을 잔 건지 일어나 몸단장 중. 기지..

적막과 평온의 공존, 여주와 흥원창_20200521

오랜만에 찾은 여주, 한강은 언제나처럼 유유하고, 고즈넉한 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차분했다. 어디선가 태웠던 낙엽이 대기 중에 향취로 남아 밟은 길 위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 기분을 이어가느라 차분히 걷는다. 남한강 두물머리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시간이 잠시 멈춰 선 시간으로 뺨을 적시던 날, 행님께선 모처럼 찾은 나를 위해 서툴지만 토닥토닥 저녁을 준비하시고, 뒤이어 들판에서 자라던 온갖 싱그러운 야채를 한가득 식탁 위에 쌓아 올렸다. 풍성한 인심은 그 어떤 양념보다 맛깔스러워 가끔 잡초가 끼어 있더라도 그건 저녁 입맛을 응원해 주는 봄내음이다. 온전한 하늘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둘러 매고 빛이 없는 들판으로 나갔으나 막상 찍고 보니 구름 일변도다. 오순도순 정성이 빚어낸 행님의 보금자리. ..

냥이_20200520

보통 현관문을 열고 귀가하게 되면 녀석은 현관까지 어떻게든 마중 나오는데 어쩐 일인지 제 쿠션에 퍼질러 누워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뒤늦게 녀석이 부시시 나와 간식 하나를 상납하자 언제나처럼 가족들 껌딱지가 된다. 베란다 정원 한 켠 영산홍이 이제서야 만개했다. 늦은 건 게으름과 기만이 아니다. 신뢰와 인내의 시선에선 화답과 확신이며, 인생과 매한가지로 꽃은 매력의 본분이 최선일 수도 있다. 하나의 꽃망울에 두 빛깔이 어우러져 단색의 편견을 뛰어넘는 경이로움처럼 한계는 언제나 내 편견의 부산물이다. 때마침 맑은 대기로 인해 석양의 물결이 흥겨움에 춤을 춘다. 테이블 파수꾼? 테이블 위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의 눈빛이라 이렇게 똘망똘망하다.

일상_20200520

하늘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도, 그 구름을 뜨겁게 불태우는 일출의 노을도 장엄하다. 이른 아침, 계절의 역행과도 같은 서늘함은 곧 다가올 여름에 비한다면 이별이 못내 아쉬운 봄의 감정이 무르익은 표현이다. 두터운 구름을 비집고 동녘에 찬란한 하루가 떠오른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구름까지 온통 불타오른다. 창 너머 비치는 세상이 바다를 뒤집은 듯 투명하고 깊다. 자연 또한 사람과 같아 괴롭히면 찡그리고, 가만히 두고 바라보면 이렇게 원래의 민낯을 보여 준다. 하늘에 조각난 구름은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새떼 같다. 어느덧 정겨운 발걸음 중 하나가 길냥이들 만나러 가는 때다. 나도 사람인지라 마냥 극도의 경계와 자리를 회피하게 된다면 어찌 될런지 모르나 몇 번 봤다고 아는 척도 해주고,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데..

일상_20200519

봄의 불청객이자 단골 손님인 황사와 미세 먼지가 올해는 예외다. 하늘만이라도 맑은 대기로 제 빛깔을 찾아 돌아오는 날엔 덩달아 기분도 화창해진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여세를 몰아 밥 한 주먹 정도 챙겨 냥이들 만나러 갔다. 온순하고 말끔한 건 한결같다. 보정하지 않은 벨비아의 채도 높은 하늘이 인상적이다. 문득 이런 하늘을 바라보면 여행 욕구가 울컥한다. 치즈뚱이 가족이 가장 먼저 반겨 밥 한 주먹 내어 주자 냉큼 식사를 한다. 이젠 약속처럼 절도 있게 모든 행동이 연결된다. 냥마을에 살지 않지만 늘 여기에서 다른 냥들과 어울리는 어린 냥. 이 녀석을 감안해서 밥 한 주먹은 꼭 남겨둔다. 가장 경계심 없는 치즈뚱이 아이는 이제 몸을 부비는 건 기본이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반기는데 반해서 좀 더 신경 쓰게..

일상_20200516

베란다 화단에서 늑장을 부리던 영산홍이 고된 준비를 마치고 꽃잎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녀석이 특이한 건 처음 하얗던 꽃잎이 해가 거듭될수록 어디선가 핑크빛과 조금씩 어울리더니 이제는 아예 숙명처럼 함께 공생한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한바탕 비가 내린 뒤에 미처 하늘로 흩어지지 못한 빗방울의 늑장 덕분에 가느다란 빛이 미려해지던 순간까지... 아직은 망울진 꽃이 많아 이 망울이 터질 무렵이면 얼마나 화사할까 기대된다. 잠시 들른 냥마을은 전날부터 내린 많은 봄비로 텅 비어 있어 식사만 남겨 두고 바로 자리를 뜬다. 들판의 흔하디 흔한 잡초라고 할지라도 이런 어울림을 통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

냥이_20200516

고양이 언어. 빤히 쳐다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면 '난 당신을 신뢰합니다.'라는 뜻이란다. 하나를 알았으니 이제 오해하면 안 되겠구나. 난 '저 집사 나부랭이, 눈꼴 사납네'라고 해석했거든. 이렇게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는 게 냥이 언어로 좋은 뜻이다. 너만 보면 졸립다, 어지럽다, 뭘 봐 등등 이렇게 오해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반기는 녀석, 첫눈이 마주치면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발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다리에 바싹 붙어 몸을 문지른다. 행여 발길에 차일까 노심초사하며 발걸음을 떼는데 어두운 밤이거나 무심결이거나 이제는 밑을 둘러보고 발을 떼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곤 쇼파 위 제 자리를 찾아 움직임 하나하나 허투루 하게 놓치지 않고 동선을 따라 쳐다본다. 이어 자리를 잡으면 바로 옆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