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398

일상_20190911

가을 장맛비는 여전하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깊게 패여 있다. 급하디 급한 빗방울이 지나가자 이내 가을 흔적이 진하게 내려 앉았다. 파란 여름 위에 애태우는 가을비. 가을이 뿌려 놓은 은빛 가루는 자욱하게 남은 여름을 덮고 대기에 녹아 있던 빛을 응집시킨다.어느 계절마다 사연이야 없겠냐만 그토록 감성의 심장을 두드리던 가을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칠까?기다리고 기다려 구름 자욱한 창가에 앉아 가쁜 숨 가라 앉히고, 그저 흘러가는 구름의 향연에 시선을 미끼 마냥 던져도 좋을 법한 시절이다.여전히 미비한 흔적임에도 이미 도치된 설렘을 어루만져 출렁이는 가을에 대한 상상에 착각인 들 한 번 빠져 봐도 좋겠다. 짙은 여름색을 뚫고 뽀얀 속살을 내민 또 다른 생명이 눈부시다. 무성하던 칡넝쿨..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러 가는 길_20190902

일찍 끝난 기회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영화 때리기!한창 아리까리한 허기가 맴돌아 메타폴리스에서 내려 샌드위치 하나 줍줍하고 급한 대로 커피는 손에 든 채 상영관으로 간다. 자칫 외로울 새라 소녀상에 강렬한 햇살을 피하기 위한 모자와 그 옆자리에 훈훈함을 돋보이기 위한 꽃다발이 있다. 전형적으로 나른하고 평화로운 공원의 전경.묘하게 느껴지는 가을 내음이 좋다.이런 방법으로 종종 영화를 보러 가는데 이 순간이 참 설레거나 마음이 가볍다. 동상에 앉은 잠자리가 위태롭게 보이는데 정작 이 녀석은 태연하다.시간이 빠듯하여 외부 계단을 통해 상영관에 도착, 인기 영화라지만 극장 비수기라 거의 텅비다시피 한적하다. 영화 관람 후 사실 무척 실망스러운 게 배우에 비해 내용은 지나치게 감동과 눈물을..

일상_20190901

다리를 다친 이후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주 걷던 산책로를 따라 걷기 테스트를 해봤다.처음 망설임이 어느새 증발하고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걸으며 다리에 부하가 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완급 조절을 해가며 걷다 6km 정도 산책 했는데 역시나 집에 틀어 박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바깥 공기를 쐬며 주위 풍경을 보는 기분이 더 낫다. 나무 터널이 울창하다. 이렇게 길을 걷다 보면 바닥에 뒹구는 낙엽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강아지풀 군락지. 동탄 열림교 아래로 진입하는 내리막길에 이 꽃이 늘 피어있는데 한 번 피면 잘 지지도 않고 오래 만개해 있는 꽃이다. 들판의 무법자, 칡꽃은 자세히 보면 상당히 매혹적인 만큼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향이 무척 좋아 늘 벌레가 들끓는다.약한 생명들의 온실과 같..

회복과 함께 봉화를 가다_20190815

깁스를 풀고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한 컨디션으로 회복된 지 한 주가 지나 틈틈히 운전대를 잡으며 연습을 해 본 뒤 봉화로 첫 여행을 떠났다.물론 혼자는 아닌데다 아직 자유롭게 활동하기 힘들어 무리한 계획은 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늘 오던 숙소에 머물며 다슬기 잡기나 이른 가을 장맛비 소리 듣기에 유유자적 했다. 봉화에 간지 이틀째, 관창폭포를 지나 의외로 큰 마을과 생태 공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찾아 나섰다.산골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음에도 간헐적으로 인가는 쉴새 없이 늘어서 있고, 더 깊이 들어서자 산골이라고 믿기 힘든 너른 밭이 보인다.각종 약재나 고랭지 야채, 과일을 볼 수 있는데 다행인건 내리던 빗방울이 가늘어져 우산 없이도 다니는데 무리가 없어 이왕이면 카메라까지 챙겨 들었다.너른 밭..

내 다리 내놔라!_20190716

퇴근 후 사우들과 배드민턴을 치던 중 갑자기 우측 종아리에 뭔가 한 대 맞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에 마비 증상으로 오인하고 옆에 앉아 열심히 다리를 푼답시고 마사지를 했는데 아무런 차도 없이 집으로 오는 길에 상당히 힘들었다.국립 중앙 의료원에 방문하여 약처방과 함께 수액도 하나 맞았는데-이유는 모르지만- 집으로 오는 내내 곤혹이었다.통증과 전기 감전된 듯한 찌릿함이 조금만 움직여도 온 몸으로 퍼졌다. 이튿날 동탄에 병원급 정형외과를 찾아간 결과 심증대로 근육 파열.3주 후에 의사가 찾아 오란다.그럼 그 때 봅시다~

일상_20190711

바람 속에 살짝 실려 세상에 나부끼는 칡꽃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수줍음이 아니라 겸손의 상징 같다. 해바라기처럼 달맞이 꽃도 천상의 부푼 꿈을 안고 있는 걸까? 산딸기 열매가 떨어지고 남은 꽃은 또 다른 부활이다. 휴일 속에 숨어 있는 여름 꽃들은 황막한 환경으로 돋보이는 봄꽃과 달리 신록이 한껏 부푼 여름에 파묻혀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다.그렇다고 마냥 신록의 그늘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일상 중 하나의 작은 부품처럼 오래토록,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다른 꽃들과 경쟁하거나 시샘하지 않는다.어쩌면 펼친 망울이 수줍음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겸손과 배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마냥 달콤하지만 스쳐가는 낮잠이 봄 꽃이라면 오래 동안 같은 모습으로 ..

일상_20190706

바람 좋은 주말, 길섶에 웅크리고 있는 풍경들이 특히나 반가워 집을 나선다. 화사한 햇살, 청명한 대기로 개망초 군락지에 우뚝 솟은 나무, 이 장면이 영화에 나올 법한 수채화 같다. 2016년 처음 보게 된 새끼 고라니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 초록이 넘쳐나는 먹이의 풍년을 누리고 있다.허나 홀로된 두려움은 반복되는 시련일 거다. 지나는 길에 풍뎅이 같은 게 있어 허리를 숙이자 바글바글하다.바람 좋은 날, 바람 나는 날이여? 오래된 공원의 작은 길을 따라 놓여 있는 벤치가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다. 강한 바람에 넘실대는 건 비단 개망초 뿐만 아니다. 폰카의 발전은 어디까지 일까? 어느새 저녁이 다가와 교회 너머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다.강한 햇살로 인해 늘어뜨린 그늘이 고맙고, 뜨거운 대지의 열기로 인해..

일상_20190629

늑장을 부리는 장마 대신 보슬한 비가 나풀거리던 주말, 반석산에 올라 둘레길을 따라 비가 지나간 궤적을 되밟아 본다. 개망초 꽃길을 지나. 매력적인 독버섯. 낙엽 무늬 전망 데크에 가까워질 무렵 산딸기 군락지가 있다. 벌써 밤송이가 맺혔다. 벤치로 제2의 생을 보내고 있는 나무. 뭔 사연이 있길래 나무가 이렇게 자랄까?같은 나무일까, 아니면 다른 두 개의 나무가 함께 자라는 걸까?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가지가 뻗은 나무. 이 꽃은 뭐지?엷은 비에도 벌 하나가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을 정도다. 장미 꽃잎에 피어난 보석 결정체. 산딸기 군락지에 아직 남아 있는 산딸기의 볼그스레한 열매가 탐스럽다.어느 젊은 여성이 수풀 사이에서 뭔가를 조심스레 따먹길래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산딸기를 열심히 줍..

문화 찬가, 김광석 거리에서_20190622

이튿날 일어나자 마자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커피 한 사발 들이킨 후 간소한 차림에 카메라를 담은 슬링백을 메고 대구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날아간 곳.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대기가 맑은 만큼 햇살이 무척이나 따갑다.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구민 운동장역에서 전철을 타고, 대봉교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흐르는 땀이 등줄을 간지럽힌다. 자근하게 곡조를 뽑아내는 멋진 음악가가 '서른 즈음에'를 '마흔 즈음에' 감성으로 읊조린다. 문화의 갬성과 먹거리 갬성이 잘 맞아 떨어지는 곳이 바로 대구 김광석 거리다.김광석을 추모하며, 또한 문화와 낭만을 버무리고, 주변 경관은 덤이다.남녀노소 없이 문화의 열정을 거침 없이 표현하는 사람들과 갓 생산된 따끈한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 발품도 마다 않는 사람들.주말이라는 황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