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516

전원주택단지의 광풍, 평창 봉평_20041110

해발 고도 700m가 인간의 주거 환경으로 최적이란 상식이 통하던 시기, 재벌가 별장도 강원도 700m 산속에 하나씩 갖고 있어 누구나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은 너나할 거 없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로 몰리던 시절이 있었다. 강원도 중에서도 영동고속도로가 관통하여 적당히 접근성이 좋고, 그렇다고 서울과 가까이 달라 붙어 있으면 수도권의 공해가 적나라게 넘나들어 적당한 거리도 필요한 그런 곳, 바로 평창이 뜨거운 감자였던 시절에 분양사무소의 전세버스를 타고 평창으로 갔었다. 평창이 워낙 넓어 특히나 사람들이 많이 찾아 실제로 개발 열풍과 더불어 기대감까지 고조되었던 곳, 봉평으로 출발할 때부터 추적추적 만추의 비가 내렸었는데 영동고속도로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비포장길과 포장길을 번갈아 산 아래까지 가다보..

추억의 사색 2024.05.22

가족들 성묘 가던 날_20041031

자식된 도리는 이유가 될 수 없는 필연이라 어느 누구도 빠짐없이 매년 2번은 꼭 성묘를 했었는데 당시엔 공원 묘지에 빈 터가 많아 이렇게 주변도 수풀이 우거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개발되면서 묘가 바둑판처럼 빼곡히 들어찼었다.관리사무소와 연결된 직선의 비탈길에서 작은 고랑을 넘어야 묘가 있는데 아이가 건너기엔 조금 후덜덜 했었나보다.관리사무소 앞 정원에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어 대비 효과로 유독 눈에 띄이고, 이쁘게 보였다.

추억의 사색 2024.05.22

가을 여밈, 인천대공원_20041026

오래된 공원이라고 낡고 낙후된 건 아니었다. 인천대공원은 오래된 공원의 탄탄한 근본 위에 이야기를 입혀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으로 가을이 물들어 공원의 주인공이신 나무 행님들이 감탄할만한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고, 자그마한 산을 끼고 있는 만큼 일대 전경을 훤히 볼 수 있던 곳이기도 했다.어린이 집이었는지 유치원이었는지 단체 어린이 관람객들은 퇴색된 잔디 위를 뒹굴며 가을 정취에 윤기를 입혔다.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자 가을 정취는 더욱 강하게 베어났다. 시흥 방면인가?서쪽 문학경기장도 보였고,북쪽 외곽순환도로도 지나고,가을 하늘은 가슴에 박힐 정도로 아름답게 파랬다.

추억의 사색 2024.05.22

아쉬운 불발, 영월관광센터와 청령포_20231120

단종의 슬픔으로 점철된 청령포는 무거운 초겨울 공기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육지 속의 섬이 아닌 땅의 기운이 근육처럼 불거진 그 배후의 지세가 특이한 명승지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청령포를 오가는 배는 분주하게 강을 횡단하며 뜀박질하는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이 작은 세상엔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이 곳곳에 은폐 중이다.모노톤의 딱딱한 벽엔 인간에게 친숙한 생명들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크게 굽이치는 서강의 온화한 물결엔 바다로 향한 서슬 퍼런 집념이 웅크리고 있었다.조선 초기엔 한이 서린 유형지로, 현재는 한강이 되기 전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지리적 부표, 청령포에서 작은 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다음 만날 곳으로 떠났다.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

위대한 믿음의 각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_20231107

믿음은 단편적이거나 열정적이지도, 달콤하거나 아름답지도 않다.오래 거듭된 귀로에서 식상함의 유혹을 물리치고 내 사념 마냥 친근한 타자, 그게 어느 순간 믿음이 되고 부지불식간에 교감의 견고한 가교가 연결되며 의심의 슬러지가 생기지 않는다.때가 되면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세상에 서리란 믿음, 그 믿음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반계리에 깊디깊은 뿌리를 내려 하늘 향해 모세혈관으로 뻗었다.가을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도 믿음의 편견은 실망이 파고들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낙엽 자욱한 이곳에서 또 한 번 위대한 믿음의 희열을 느꼈다.미세 먼지도 물러난 청명한 가을 하늘에 홀린 듯 이 자리에서 서서 여지없이 감탄사를 공양하고, 감동을 주섬주섬 챙겼다.앙상한 가지만 남았음에도 간헐적으로 찾는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하리..

태백의 일기, 철암_20221109

그리 긴 세월의 향연도, 그리 머나먼 과거도 아닌데 까마득한 건 망각의 영역에 방치한 기억의 단절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고, 더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허나 옛 정취는 모두 자물쇠가 물려 있었고, 재현된 영광엔 그리 신선할 것도 없었다. 아마도 직접적인 추억이 없어 정취의 발 담그기에 그친 부분도 있겠지만, 옛 정취 재현이 마치 불친절하고 무관심한 것도 미화해서 받아들일 거란 불성실한 부분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꽈배기 한 손에 잡고, 산골 싸늘해진 바람에 의지해 호호 불어 먹는 커피는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흥얼대는 몰입감 이상으로 재밌었는데 산골 낮은 언제나 짧다는 불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철암역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2014년에 탄광지역 생활현장 보존·복원사업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