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지인집을 나서자 기분 좋은 햇살이 눈부시게 퍼붓는다.
어느 국밥 집에 들러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텀블러에 커피 한 잔을 담아 지도를 보며 미리 계획했던 아리랑 문학마을로 향하는데 우리 나라 최대 곡창지대라고 배웠던 평야를 바라 보자 실감이 날 만큼 끝도 없이 펼쳐진 김제 평야가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다독인다.
처음에 문학마을이라는 텍스트만 봤을 때 마치 아리랑류의 고전 문학 박물관 같은 느낌이 강했으나 막상 도착하여 찬찬히 둘러 보자 일제 침략기의 치욕적인 역사가 문학에 베어 있는 사실들을 중심으로 집대성 시켜 놓았다.
침략과 그에 대한 저항이 작은 마을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작품과 작가의 연대도 놓치지 않았다.
일제 침략기 당시 재현된 건물들이 초입에 들어서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진중해져 발길을 돌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를 재현한 내부 전경들.
노동력과 곡물을 착취 했던 현장과 사실들을 재현해 놓았는데 김제가 한반도 최대 곡창 지대인 탓에 특히나 깊은 애환이 서려 있었을 거다.
우체국 밀고자.
각종 살상 무기와 고문을 위한 도구가 있다.
암울한 역사 위에 무심하게도 화사한 햇살이 쏟아진다.
가증스런 역사적 증거들.
때론 선과 악이 불분명할 때가 있다.
어느 누군가는 선을 위장한 악을 자행하고, 또 다른 어느 누군가는 악으로 재단 되는 선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친일파들은 언제나 가증스런 목숨을 연명하고자 미화 시키고 변질 시키는 악행을 저질러 왔다.
독립에 헌신한 위인들의 민가를 재현해 놓았다.
알려 지지 않은 수 많은 독립 투사들을 발굴해 그들의 행적과 업적도 알리고 있다.
불어 오는 겨울 바람에 넘실대는 대나무숲은 문학 마을 가장자리에 울타리처럼 자리 잡고 있다.
문학마을 초입엔 일제의 건물들이, 가운데엔 너른 잔디밭, 가장 깊은 안쪽은 독립 투사들의 민가와 마을들을 재현해 놓았다.
만행을 알리고 잠시 쉬면서 선행도 알리고자 함일까?
널찍한 잔디 광장과 야외 공연장은 공원 산책 삼아 오더라도 좋겠다.
문학마을을 한 바퀴 돌자 200 여 미터 따로 떨어져 묵묵히 자리 잡은 하얼빈역이 보인다.
첫 인상부터 심상치 않았던 문학마을.
믿기 힘든 먼나라 역사가 아닌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이 나라의 암울한 역사이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알리고자 함이다.
그렇다고 가해자들을 하나로 싸그리 묶어 저주 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역사는 권력의 횡포이자 그 횡포의 순환이니까.
게다가 우리 나라에서도 매국노들이 넘쳐 선량한 시민들과 동격화 시키기엔 선악을 퉁쳐낼 과오가 있다.
권력을 악용하고, 양심이 없고, 기회에 영혼을 맞긴 자들이 대대로 저주 받아 마땅 하건만 명백한 권선징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과가 없다는 건 과오를 몰라 다시 치욕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며, 그 본능이 집단화 되어 권력에 참혹한 노예가 된다.
매국노들을 미화시켜 찬양하는데 국고를 소진시킬 게 아니라 이런 아픈 과거를 깨우쳐 주는데 세금을 써야겠지.
그래서 여길 왔던 게 내게 있어 좋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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