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가려다 불발되어 뒤늦게 고창으로 향했다.
하필 한여름 같은 초가을, 일기예보에서 낮기온 30도 넘는 폭염이란다.
그건 내가 신경 쓸 바 아니라 계획에만 충실하자.
상습정체구간을 지나 어느 순간 고속도로는 거짓말처럼 한산하고 뻥 뚫렸다.
옅게 뿌리는 빗방울이 그치고, 형체가 보이지 않던 방문산에 구름이 걷히며, 고창에서의 시간이 열렸다.
간헐적으로 옅은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천안 지나 정안까지는 꽤 차가 많았었는데 서천공주 고속도로를 타면서부터 금욜 같지 않게 한적했다.
오후 햇살이 서녘으로 많이 기울어 약한 빗방울이 창을 때리다 그쳤다.
부여를 지날 무렵이었다.
서천으로 넘어가 조금만 더 진행하면 서해안 고속도로에 합류가 임박했다.
서천공주 고속도로가 끝나고 서해안 고속도로에 합류하는 중이었다.
서천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합류하여 금강을 넘어가는 금강대교에 진입했다.
시원스럽게 달려도 좋을 만큼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았고, 날씨도 적당했다.
금강대교를 넘어 군산에 진입.
군산에서부터 탁 트인 시야가 가슴까지 뚫어버렸다.
만경강을 지나기 전, 군산에서 김제로 이동하는 경계 지점에 근접했다.
만경강을 지나면 김제로 흔히 평야가 가장 넓은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종종 들리게 되는 곳으로 김제평야에선 지평선도 볼 수 있었다.
서김제는 2년 전인 2020년 김제행에서 일몰을 맞이했던 능제가 바로 옆에 있는 지점이었다.
능제를 지나 뻥 뚫린 김제평야를 질주했다.
김제 죽산에 오면 평야 따라 길게 뻗은 도로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눈길을 끌었다.
전라도에 오면 가로수와 어울린 멋진 도로가 참으로 많다.
죽산을 지나 부안으로 넘어갔다.
멀리 우측 까마득하게 희미한 산지가 변산반도임을 알 수 있었다.
부안을 지나는 길이었다.
부안을 지나 줄포, 선운산, 고창IC 순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변산반도가 꽤나 가까워졌고, 부안에 도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늘 향해 수직으로 뻗은 가로수가 멋진 부안IC를 지났다.
줄포IC, 선운산IC를 지나면 고창에 다다른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변산반도에 근접해서 지나는 지점으로 부안과 줄포 사이 구간을 지났다.
처음 전라도 여정으로 갔던 곳이 변산반도 격포와 채석강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줄포 졸음쉼터가 사실상 부안이 아닌 고창의 시작인데 전방에 줄포 졸음쉼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우측에 솟은 산이 선운산 일대로 설렘도 그만큼 우뚝 솟았다.
행정구역상 고창에 들어서자 구름의 중량감도 느껴졌다.
선운산IC가 가까워져 고민했다.
동림지에서 일몰을 볼 것인가, 그냥 지나칠 건가.
일몰 때까지 비교적 시간이 길게 남았고, 날이 흘려 이번엔 지나치기로 했다.
고민하던 찰나에 나도 모르게 선운산IC로 빠져나와버렸다.
다행히 23번 국도는 차가 거의 없고, 컨디션은 고속도로 수준이라 목적지까지 시간차가 거의 없겠다.
게다가 멋진 가로수들이 손 흔들어 반겼다.
이따금 추월하는 차가 있긴 해도 전체적으로 한적하고 쭉쭉 뻗은 도로라 운전하기 수월했다.
고창읍을 지나 숙소 체크인을 위해 석정으로 가는 길.
도로가 어찌나 멋진지.
앞서 벚나무길을 지나 이젠 소나무길로 숙소 일대는 유명 온천 단지며, 동시에 관광단지였다.
웰파크시티 도착.
가로등이 하나둘 밝혀졌다.
온천 단지와 휴양시설, 공원이 이어져있는 방장산 아래 유명 관광 지대였다.
서둘러 체크인 후 숙소는 들리지 않고 바로 고창읍성으로 달렸다.
웰파크시티 배후엔 멋진 방장산이 버티고 있었는데 산 언저리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라 고창읍성 주차장에 주차한 뒤 그 장관에 빠져들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간 모양성 순두부는 고창의 맛집 중 하나로 첫 술은 뭐지? 그런 명현 반응을 거친 뒤 미각을 현혹하는 매력이 끈덕진 곳이었다.
처음엔 부드럽고 수줍게 다가왔다 점점 구수하고 감칠맛이 남는 순두부 전문점으로 간소하게 보이는 반찬 또한 남길 수 없는 맛집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조합을 버무린 맛으로 자칫 입안이 홀라당 데일 수 있는 묘한 순두부.
사실 도중에 맛에 취해 급히 먹다 입안을 홀라당 데일 뻔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거짓말처럼 하늘은 어둑해졌고, 어디선가 사람들이 한둘 들어서기 시작하여 식당 내부 홀엔 사람들이 가득 찼다.
식사를 하고 나와 땅거미가 꺼지며 도시의 불은 하나둘 밝혀졌는데 청명한 날씨에 하늘과 도시의 불이 뒤섞여 아름다운 야경을 놓칠 수 없어 고창천을 따라 잠시 걸었다.
고창천을 따라 짧게 산책을 하는데 어느새 땅거미마저 자취를 감췄고, 조용한 읍내, 화창한 밤하늘, 새롭지 않지만 무척 정갈한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숙소는 빌라 형태의 대단지 펜션으로 조금 오래된 흔적에 익숙하다면 단아한 내부 공간의 친숙함에 금세 젖을 수 있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었고, 게다가 물은 연수기를 돌린 것처럼 매끈매끈했다.
단점은 타월에 오래 건조시킨 악취가 묘하게 배어 나왔다.
이른 저녁시간이라 잠시 외출 겸 숙소 바로 밑 외정공원에 들렀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꾸준히 산책 나올 만큼 전체적으로 만족스런 공원이었다.
오래 공원을 돌 수 없었던 이유, 잠시 서 있는 사이 까만 산모기한테 뺨을 물려 미치고 짬푸하도록 가려웠다는 건 안비밀!
해 질 녘, 만약 그러할 수 있다면, 잠자는 타자를 불러 여유가 가미된 미각에 흠뻑 취하도록 내버려 둔 채 땅거미의 파리한 조명불에 간드러진 정갈한 거리를 거닐며 시각에도 취하고 싶었다.
기억의 필름에 맺힌 상이 무색할 정도로 한바탕 변화가 몰아친 고창에 회상이 무얼 의미가 있을까?
퇴색된 시간을 벗겨내고 새로이 정갈한 옷매무새 입은 창연한 거리를 각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옅은 조명의 선명한 찰나는 단꿈처럼 달달한 혀끝에 조바심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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