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날이었다.
바로 아끼던 렌즈를 박살냈던 날.
아쉽게도 티워니로 찍은 사진은 맥북 수리때 백업 부재로 날아가 버린 불상사.
근데 가슴에 남은 기억은 좋았어.
통나무 집을 나와 며칠 전 내린 눈이 추위로 얼어 붙어 고스란히 쌓여 있는 문경 새재 길로 출발했다.
가던 길에 데크가 있네?
차에서 스피커를 챙겨 연신 이어지는 오르막길로 가다 보면 통나무집이 보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자리 잡은 통나무집은 안에서 여간 떠들어도 다른 곳에 전달이 되지 않고 흩어져 버려 음악을 크게 듣기 좋다.
늘 다니던 큰 길을 버리고 통나무집들이 있는 작은 길로 계속 진행하다 보면 큰 길과 만나는 길이 있다.
아마도 휴양림에 식수로 사용하는 댐이 아닌가 싶다.
담수된 곳은 철조망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사방댐 앞 작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부터 복원된 문경 새재 길이 시작된다.
큰 길로 다니면 편하겠지만,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뱀이 있을 거 같아 겨울 만이라도 이 길을 선택해서 걷는다.
매끈한 큰 길보다 이 길이 걷거나 둘러 보기 좋고, 걷다 보면 이 길이 이쁘다.
큰 길과 거의 나란히 뻗어 있는 옛길은 방향이 같다지만 세세히 보면 꾸불꾸불 여기저기 꺾여 있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자리에 돌계단이 깔려 지루할 틈이 없다.
이 길의 가장 높은 곳은 문경 새재지만 걷다 보면 옛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애환이 길 곳곳에 묻어 있는 것만 같아 걷는 속도가 늦춰지고, 많은 사연들을 접한 기분이다.
그래서 바람도 잦아 들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듣고 위로해 주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
좁은 계단 길을 지나면 완만하고 널찍한 길도 만난다.
양지 바른 곳이라 다른 데 비해 눈이 많이 녹아 길의 원형을 볼 수 있다.
계단 길을 지나면 줄곧 이런 평탄한 길이 반복된다.
그렇다고 그 길들이 전부 같지 않음을 알게 되어 더 면밀히 보게 되고, 봄이나 여름에 볼 수 없었던 풍경들도 만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을 하거나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기분이다.
평탄한 길을 가던 중 갈림길이 나오지만 문경 새재는 어디로 가야 되는 건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허나 그 길은 이미 정해져 있고 약속된 길이라면 처음 알게 된 산 쪽 오르막 길은 발동되는 호기심 충족을 위해 잠시 들러야만 했다.
원형의 돌계단식으로 꾸며진 여긴 뭘까?
휴양림 개발로 어떤 테마를 부여 했을 터인데 소복히 덮힌 눈에 가려 알 수 없다.
원형 광장이라고 하기엔 작고, 몇 그루 나무가 있다고 화단이나 야생화 군락지라면 너무 뜬금 없다.
60분을 이정표 방향으로 가면 마패봉?(여전히 흐림, 조령산 고갯길_20170629)
한결 같이 걷고 싶은 길들이라 몇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꽤나 시간이 흘러 해는 이제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이 되었다.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고자 좀 더 앞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그 집중이 흐려져 주위를 꽤나 찬찬히 훑어 보며 걸어 다시 가던 속도가 늦춰졌다.
수도 없이 꺾고 넘어온 길의 끝자락엔 이렇게 길섶에 돌 무더기가 쌓여 길의 형체를 온전히 보전해 주고, 그 길의 포근함에 가만히 쉬고 있는 눈은 세상으로 먼 길을 떠나기 전, 자근히 쉬고 있었다.
첩첩이 쌓인 들 무엇 하나 나서거나 밀어내지 않고, 도리어 높은 백두대간을 넘기 전 겨울 햇살과 바람도 잠시 쉬어갈 아량을 베풀듯 모든 게 잠잠하기만 하다.
길을 나선 나그네도 뿌듯한 오르막길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안도의 깊은 한숨과 함께 지친 다리를 쉬게해 주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방울도 세상의 자유로움에 풀어 준다.
새재 정상엔 너르고 평탄한 광장이 있어 지금까지 걸아왔던 길을 되돌아 보며 마음껏 안도하게 해 준다.
이 길의 가장 높은 정상이자 충청도의 끝자락은 진정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이제 경상도 문경새재 길이 고스란히 연결된다.
눈 쌓인 문경새재는 찾는 이가 거의 없는 평화로운 휴식 중이다.
주말 휴일 동안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이 자리를 채우고, 길을 떠난 나그네처럼 한숨을 쉬며 땀을 훔칠 거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도드라져 보인다.
새재의 관문은 여전히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조령에서 왔을 때 새재 관문 좌측에 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있어 넉넉한 시간을 활용하고자 산길에 첫 발을 내디뎠다.
사람이 거의 없는 새재 관문이라 여기는 인척이 전혀 느껴지질 않아 새재 길에 오르며 주위를 찬찬히 살피듯 이 길도 아주 느긋하게 밟고 나갔다.
20여 분 오르자 그마저 있던 눈 위의 발자국도 어디론가 사라져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선명하게 각인 되었다.
눈 아래는 도토리 나무와 솔방울이 가득하고, 눈 위에는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한창 오르다 점점 두터워지는 구름과 서산으로 기울어진 태양을 보곤 가던 길에서 다시 돌아 조령관으로 내려왔다.
그나마 앉아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나 문경 방면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도 잠시 앉아 땀이 식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왔던 조령산 방면으로 출발했다.
조령관 괴산 쪽은 문경보다 작지만 여러 가닥의 길과 쉼터가 들어서 있고, 몇 가지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올라 왔던 길이 고사리마을 방향 넓은 한길이라면 고사리마을 푯말이 있는 밑에 보이는 길은 휴양림과 통나무집이 늘어선 휴양림 길이다.
여름에 뱀을 보곤-통나무집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해서 뱀 볼 일은 없지만- 휴양림 길은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어 저 길로 내려가는 방향을 잡았다.
작은 골짜기 치곤 나무가 상당히 우거져 있어 신록이 지나면 햇볕 들어올 틈이 거의 없고, 골짜기 너머 보이는 길이 괴산 방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한길이다.
다른 길에 비해 눈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걸 보면 이 길은 겨울 동안 출입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신기하지?
조령관으로 올라올 때 그리 화창하던 날씨가 이제는 거의 구름에 덮혀 있다.
휴양림 가장 깊고 높은 위치에 늘어선 통나무집들은 대부분 크기가 가장 작은 4인실이라 한 가족이 이용하기 딱 알맞다.
지도상 바로 조령관 밑으로 나와 있지만 거리는 좀 있는 편이다.
여기 부근 쯤? 건너편 산자락을 촬영하던 중 눈이 없을 거라고 방심한 나머지 미끄러져 공중 낙법을 시행하면서 카메라도 덩달아 내동댕이 쳐버렸다.
카메라 바디엔 깊은 상처가 패이고, 렌즈는 큰 표식이 없었는데 나중에 초점이 맞질 않아 싸비스를 맡기고 견적을 받았는데 렌즈값!이다.
렌즈 박살 난 그 장소가 바로 여기 윗편 팔각정 정자 부근이다.
낙법한 카메라와 렌즈를 추스려 내려가는 길엔 사람과 동물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다.
고라니 발자국도 보이고...
워낙 나무가 빼곡한 휴양림이라 헐벗은 나무들이 서있는 자리도 역시나 조밀하게 자라고 있다.
(언제나 흐림, 조령산 고갯길_20170613, 귀여운 철마, 문경 레일 바이크_20170831)
오죽했으면 처음 조령산 휴양림에 들러 통나무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밖이 잔뜩 흐린 줄 알았다.
그만큼 깊지 않으면서 산림이 울창한 숲이 조령산 휴양림으로 신록이 오는 계절에 가끔 들러 더위를 피하기 좋아 산책으론 그만이다.
줄곧 한 길을 따라 내려 오면 묵었던 향나무집이 나오고 이내 관리 사무소를 비롯하여 차를 세워둔 주차장이 있다.
내린 눈이 쌓여 얼어 붙을 만큼, 그래서 눈이 고스란히 남은 것처럼 보이는 전형적인 겨울 날이었지만, 이 날만큼은 세찬 바람이 잦아들고 대기가 추위를 느낄 수 없는 고요한 날이었기에 마음 한 구석엔 포근한 기억이 남은 조령산 휴양림 여행.
별반 차이 없이 느끼는 아쉬움이 더해져 이 해, 이 날 겨울은 포근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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