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 64

힘찬 개울소리가 휘감는 학가산 휴양림_20190924

역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늦잠을 잤다.밤에 도착한 학가산 휴양림은 조성된 지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여 숲속의 집에 들어서자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구조 또한 가파른 계단이 연결된 복층이 딸려 있었다.허나 오래된 만큼 위치 선정이 탁월하여 통나무집 바로 옆이 견고한 제방으로 다져진 개울이라 여름 피서로 오게 된다면 바로 옆 개울로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다듬어져 있었고, 비교적 가파른 길을 통해 듬성듬성 배치된 통나무집이 꽤 많았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개울로 트여 있는 발코니 창을 열자 바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힘차게 흐르는 개울과 그 너머 쨍한 가을 햇살이 바로 비췄다. 텅빈 숲을 오롯이 채우는 물소리가 아름다운 선율의 뉴에이지 음악처럼 밤새 들리며 회색 도시에서 찌든 소음을..

학가산으로 가던 중_20190923

추분이라 조금 늦었다고 예천 도착할 즈음 이미 해는 넘어가고 밤이 찾아와 마땅한 저녁 끼니 해결할 곳을 찾던 중 2년 전 방문했던 식당에 찾아갔더니 아직 영업 중이라 급히 저녁을 해결한다. 평일 밤8시 무렵 사위는 적막 그 자체고 전날 내린 남부지방 호우 여파로 식당 앞 개울 물소리는 힘차다. 숯불제육은 불향이 살짝 가미되어 있어 먹기 좋고, 오겹살이라 쫄깃한 식감이 있다. 시골 기준으로 늦은 밤이라 사진 찍을 겨를 없이 줍줍하기 바빴는데 특히나 여기 청국장은 괜춘한 편이다.청국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 있는 건 아니고 살짝 으깨 놓았는지 맛은 그대로 살아 있고, 굵게 갈아 놓은 멸치와 섞여 감칠 맛이 난다.폭풍 흡입 하고 나서 쥔장 내외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지만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화법이 처..

일상_20190921

주말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가을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가을 내음이 물씬하여 가벼운 방수 코트를 하나 걸치고 공원을 나갔다. 걷기 좋은 나무 터널 아래 바람을 타고 온 미세한 숲의 향기가 잠자고 있던 미소를 깨운다. 오후가 무르익을 수록 빗줄기는 더욱 가늘어져 얇은 방수 코트 위에 송알송알 빗물이 영근다.걷기 좋은 산책로를 따라 가는 동안 공원이 텅빈 것처럼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부쩍 줄어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가울 때가 있던 날이다. 적막의 한가운데 서서 비와 바람의 곡조를 음미한다.이렇게 가벼운 비는 도리어 활동에 큰 지장이 없고, 묘한 적막의 단맛이 느껴진다. 해 질 무렵 구름을 뚫고 석양이 비춰 육중하던 구름을 붉게 태워 허공으로 날려 버린다.어찌나 이 색감이 고운지. 가을에 감탄..

마을 수호신, 원주 부론_20190915

보호수이자 시골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 같은 당산나무들. 마을의 평온과 번영을 지켜 주는 갖가지 전설이 설사 꾸며진 이야기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 수호령에 무던히도 많은 위안과 안도를 꿰차고 시련을 극복해 왔었다. 수 백 년, 거센 바람과 병충에도 견뎌 온 걸 보면, 또한 지나는 길에 제 한 몸 바쳐 뙤약볕을 막아 그늘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치부할 수 없는 생명의 존엄을 느낄 수 있다. 강원/경기/충북이 만나는 지역이자 원주/여주/충주가 인척이 지역은 사투리도, 지역 성향도 비슷하다. 부론의 보호수로 나무가지가 집 안으로 뻗자 그 자리를 내어줬던 과거 흔적들이 이제는 잘려져 나가고 차단되어 버렸다. 훈훈한 장면이었는데... (시간의 파고에도 끄덕없는 부론_20150307, 추억과 시간이 만나는 곳) 여..

8년 지난 새 것 같은 아이팟 나노_20190915

2011년 중반 경에 지인께 선물 드린 게 당시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팟 나노 레드 에디션이다.에이즈 퇴치 기금으로 일부 전달 되는 프로덕트 레드는 애플스토어에서만 판매 되어 제 값주고 구입해서 깨알 같던 곡을 넣어 선물 드렸는데 처음 작동해 보고 '신세계'라는 표현을 사용 했던 이 아이팟 나노를 아직도 잘 간직하고 계신다.게다가 민트급을 넘어 부드러운 천에 닦아 놓으면 새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의 완벽하다.그걸 본가에서 가져와 여주에 오실 때면 짱짱하게 음악을 틀어 놓고 일을 하신다는데 이걸 구입해서 선물 드리고 몇 개월 지나 나도 같은 아이팟 나노 블루를 구입했지만 거의 걸레와 같은 상태라 이것과 대조된다.허나 외관이 어떻든 여전히 출퇴근 길에 내 뮤직 라이프를 충족시켜 주고, 성능에 있..

천고마비라~_20190915

가을이면 여주는 결실로 풍성해진다.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햇살이 무척 따사롭던 휴일, 여주 지인께 찾아가 농사일 도와 드린 답시고 어설프게 거들다 줄무늬 산모기의 소리소문 없는 공격으로 순식간에 4방이나 물려 방탱이가 되도록 퉁퉁 붓자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백화유를 바르고 가려움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사이 작은 텃밭 하나를 후딱 해치우셨다.대낮에 밭에서 산모기가 출현해서 맘 잡고 일해보려는데 방해를 하다니. 잠시 쉬다 함께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 보기로 하고 집을 나서자 너른 생강밭 위로 뜨거운 가을 햇살이 듬뿍 쏟아진다.여기는 여주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전체적으로 완만한 구릉지대라 지금까지 홍수 피해가 전혀 없었고, 그러면서도 모래와 점토가 섞인 기름진 토양이라 밭농사가 잘 된단다.가까이 청미천과 남..

일상_20190911

가을 장맛비는 여전하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깊게 패여 있다. 급하디 급한 빗방울이 지나가자 이내 가을 흔적이 진하게 내려 앉았다. 파란 여름 위에 애태우는 가을비. 가을이 뿌려 놓은 은빛 가루는 자욱하게 남은 여름을 덮고 대기에 녹아 있던 빛을 응집시킨다.어느 계절마다 사연이야 없겠냐만 그토록 감성의 심장을 두드리던 가을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칠까?기다리고 기다려 구름 자욱한 창가에 앉아 가쁜 숨 가라 앉히고, 그저 흘러가는 구름의 향연에 시선을 미끼 마냥 던져도 좋을 법한 시절이다.여전히 미비한 흔적임에도 이미 도치된 설렘을 어루만져 출렁이는 가을에 대한 상상에 착각인 들 한 번 빠져 봐도 좋겠다. 짙은 여름색을 뚫고 뽀얀 속살을 내민 또 다른 생명이 눈부시다. 무성하던 칡넝쿨..

태풍 링링이 오던 날_20190907

올 들어 유독 예년에 비해 태풍 소식이 잦다.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비는 그리 많지 않지만 바람이 강력한 태풍이라는데 오늘 하루가 절정이자 고비란다.전날 집을 나서 원주에 들러 하루 지내는데 창 너머 바람 소리가 꽤나 강력한 태풍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점심 해결하고 여주로 넘어와 종영형 잠깐 만나기 전에 커피 한 잔 사서 말 그대로 얼굴만 보고 헤어져 지인이 계시는 곳으로 왔다. 여주IC에서 내려 여주읍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돈까스 집 건물 외관이 특이하다.적벽돌로 쌓은 뒤 통유리를 외부에 덧대어 미관상 돈까스 집이 아니라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첫인상이다.종영형과 헤어져 지인이 계시는 곳에 도착하자 태양초-엄밀히 이야기하면 태양초가 아니고 건조기로 말린 건데 집에서 태양초 만들어 보면 정말 햇볕 좋은데..

일상_20190905

가을 장맛비가 한창이다.맑다가 갑자기 흐리고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쳐 버리기도 하고, 그치는가 싶다가도 지루하게 내리길 다반사. 비가 내린 뒤 일시에 걷히는 구름으로 거대한 무지개가 하늘을 채색했다.금새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남가일몽인들 어떠하리.이제 가을인 걸. 가끔 그럴 때가 있다.아무런 기대 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는데 예상치 못한 경관으로 한참을 우러러 본 적.가을에 대한 기대감도 잊을 만큼 나는 앞만 보며 무얼 그리 응시 했던가.가을 비가 추적히도 내리던 저녁, 작은 행복에 미소 짓는 그런 날도 있긴 하다.비 온 뒤의 쾌청한 하늘은 고난 뒤의 성취감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