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 25

첫 기억_20170505

내가 태어난 곳이 이 건물로 이용소 뒷편의 자그마한 방이었단다.장소는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 내가 태어난 곳이란 걸 처음 알게 되었고 방문 했을 당시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아주 어릴 적, 뛰어 놀던 이 동네 풍경은 여전히 자잘한 파편으로 나마 기억 창고에 있건만 굳게 닫힌 문과 빛 바랜 간판은 모든 걸 체념하고 시간에 묻혀지길 기다리고 있었다.짧은 꽃무늬 반바지를 입고 동네 아이들과 거리를 활보하던 중 자전거에 치여 오마니의, 큰누나의 등에 업혀 끙끙 앓던 소리를 간헐적으로 뱉어 내던 모습은 지독히도 생생히 남아 있다.이 동네는 어느덧 시간의 탈을 갈아엎고 이 도시에서 최고의 부촌으로 거듭났건만 여전한 시간의 흔적은 지우지 못했다.그 덕분에 내가 태어난 곳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지도 모르겠다.8월 둘..

내겐 좀 특별한 물통, 바이오탱크_20170505

가끔 다니는 여행에서 불현듯 밀려드는 갈증은 악어와 악어새, 피부와 모낭충 관계처럼-부적절한 비교일 수 있으나- 필론의 공생관계다.정신을 잠시 주머니에 넣고 주변 (신선한) 생소함에 몰입한 채 여행을 하고 있노라면 갑자기 밀려 오는 갈증을 막는 딱 하나의 방법, 걍 약수터에서 물 한사발 들이키면 마치 꿀을 풀어 놓은 듯 무척이나 달다.그 단맛과 속 시원히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 오려고 창고 속에서 빛바랜 물통을 끄집어 내었는데 워낙 오래 쳐박아 둔 탓에 물통 뚜껑을 열자 환경호르몬 삘 나는 악취가 진동을 한다.이 물통은 내게 참으로 특별했던게 음성 금왕의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엄청시리 고마웠던 은사께서 정수기 대용으로 이 물통을 선물해 주셨고 그 아릿다..

비슬산의 유가사_20170504

이튿날 일찍 꽁지 불 난 사람처럼 냉큼 일어나 분주히 외출 준비를 하곤 오마니께서 가고 싶으시다던 청도 한재길로 출발했다.가는 길에 청도읍 추어탕을 먹고 갑자기 든 커피 욕구에 지도를 검색, 청도휴게소에 투썸이 있어 커피 한사발 마시겠다고 고속도로를 타고 뎁따시 큰 걸루 하나 사서 밀양에 내려 국도를 타고 한재길로 접어 들었는데 온통 미나리 컨셉이다.청도 단미나리가 유명하다고?한재길을 타고 한참을 들어 갔는데 끝도 없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미나리 식당이며 하우스가 들어차 있어 하염 없이 올라가자 인가가 끊기고 급격한 오르막길이 나와 잽싸게 차를 돌려 다시 도로를 거슬러 내려 갔다.그러자 자그마한 하우스에 한 어르신이 미나리 씻으시는 모습을 보곤 차를 세우자 오마니께선 하우스로 들어가시고 난 길 가장자리에..

쓸쓸한 망우당의 밤_20170503

오랜만에 찾아 온 대구는 아부지 찾아 뵙고 미리 예약해 놓은 인터불고 호텔로 도착, 그 사이 해가 서산으로 기운지 한참을 지난 깊은 밤이 되어 버렸다.오마니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를 챙겨 바로 옆 망우당 공원으로 행차 하셨는데 언제나 처럼 여긴 밤만 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적막의 공간으로 단장해 버린다.(망우공원 야경_20150403, 산소 가는 날, 봄도 만나_20160319) 영혼이 없는 누군가가 나를 째려 보는 낌새에 올 때마다 깜놀한다.가뜩이나 사람이 없는 공원에 흐릿한 조명 뒤 동상은 자주 오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처럼 가끔 들리는 외지인은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을 거 같다.분명 밤에 누군가 여기에서 나처럼 놀라 자빠진 사람이 있을 거야. 텅빈 공..

아부지 잘 계셨슈~_20170503

예년 보다 늦은 성묘?보통은 설 지나고 활동하기 딱! 좋은 4월달에 찾아 갔건만 올해엔 회사 업무 파악으로 5월에야 가출한 정신머리를 찾아 오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한 해 전에는 3월에 가고 올해는 5월이라... 늘 같은 자리에서 찍는 인증샷임에도 갈수록 매끈해 지는 풍경이 점점 낯설어진다.특히 가을에 비포장된 길을 자욱히 덮고 있는 낙엽과 조금은 덜 정갈한 울퉁불퉁 튀어 나온 나무 가지들이 늘어선 길이 더 정감이 간다. 어디서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민들레. 아부지, 그간 잘 계셨쥬?다른 자식들은 이미 다녀 갔고 저는 이제야 와부렀어요.여기서 혼자 지내신 것도 조만간 30년 가까워지는데 늘 우리 가족 보살펴 주신 덕에 오마니,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손주들도 더불어 겁나 징그러워요.우리가 건강할 ..

일상_20170501

이거 5월인데 왜 여름 같지?간소한 차림으로 동네를 다니는데 워째 얼마 걷지 못해서 땀이 삐질삐질 베어 나온다. 아파트 담벼락을 가득 채운 영산홍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기 시작하는 시기에 맞춰 동네 곳곳을 물들여 나간다.근데 이 강렬한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겁나 뜨겁구먼. 동네 고샅길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사람들로 느므느므 한산하다.소나무 가로수가 많아 겨울에도 비교적 우거진 길인데다 처음엔 한눈에 보이던 길 전체가 이제 성장판이 팍팍 열린 나무로 가려져 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반석산 아래 노인공원 팔각정 아래엔 따가운 햇살을 피해 아직 남은 봄바람을 쐬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꽃봉오리를 피우는 중이시다. 대낮 공원을 밝히는 활짝 핀 민들레 씨앗. 둘레길을 접어 들자 살랑이는..

석가탄신일 전 미리 찾아간 만의사_20170426

무신론자이면서 오마니 기도는 종교적인 차원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모셔다 드리고 나는 조용한 사찰에서 봄바람 맞으며 기분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원은-최소한 우리 오마니께선 그렇다- 굳이 종교에 완전 의존하는 게 아니라 지극한 기원 중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그걸 굳이 거절하거나 비판?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때마침 올 석가탄신일은 여느 해와 달리 좀 빠르게 5월 초라 미어 터지는 고행은 피하기로 하고 미리 느긋하게 다녀 오기로 했다. 사실 만의사는 가깝고 만만한 거리라 다니시는 거지 내용물은 그리 흡족하지 않으시단다.왜냐?모든 종교의 타락 징후는 바로 세속에 젖어 들듯 돈독이 올랐다는 건데 여기는 딱 유전자가 돈의 DNA가 티 난다.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하..

올인원! 따라 올테면 따라와 봐~ 네임 뮤조_20170226

LG TV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대중적인 PCM 광출력이 아니라 돌비 돼지털로 출력 되기 때문에 리시버와 티비 사이에 디코더를 물리던가 아니면 광입력으로 돌비 돼지털을 지원하는 리시버가 있어야 된다.그 외 음성출력은 코엑시얼이나 헤드폰 단자와 연결하는 수 밖에 없는데 기존 연결해 놓은 오디오는 거의 무형지물에 가까워 활용도도 떨어졌고 앰프가 워낙 오래 되다 보니 첫 출력 시 좌우밸런스가 맞지 않아 볼륨 다이얼을 일정 이상으로 키워주면서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번갈아 가며 돌려 줘야 했다.결정적으로 영화를 보거나 티비 음악 프로그램 시청할 때 빈약한 티비 스피커로 도저히 만족할 수 없기 땜시롱 오디오를 물려줘야 하는데 출력 궁합으로 인해 늘 짜증 지대로였다.그러다 변환 디코더마저 단종 수순이라 불과 2..

일상_20170423

봄이 무르익어 가는 반석산 둘레길을 일요일의 게으름을 박차고 일어나 걷게 되었다.한 동안 자전거 타기를 등안 시 하면서 위안 삼아 반석산을 올랐건만 여름이 가까워지면 다시 자전거 타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올 봄은 걷기로만 했다. 노인공원에서 부터 둘레길에 합류하여 가볍게 걷기 시작한다. 단숨에 오산천 전망 데크까지 걸어 가면서 봄이 참 많이 익었구나 싶다.어느샌가 5월부터 조금만 활동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짧은 봄을 실감하게 되는데 얼마 남지 않은 4월의 조바심에 잠깐의 짬이 허용되면 이 길로 접어 들던 횟수가 이제는 셀려면 복잡해 졌다.이 길을 이용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는 이마저도 힘들다고 벤치만 보이면 넙죽 엉덩이를 깔고 깊은 심호흡에 허덕였지만 이제는 친숙해진 만큼 전망 데크는 그냥 무시하고..